[기고문]풍수조경(風水造景) 이야기(1)

중국 길림성 장춘시 근민루
기사입력 2022.02.14 10:19
댓글 0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장운기.jpg
                        장운기 산림전문위원, 풍수조경사상체질치유연구가

풍수조경에 대해 소개를 해 보고자 한다. 풍수조경이란 용어가 생소할 수 있으나 풍수조경은 조경의 한 분류로 풍수지리와 예로부터 전해오는 사상, 땅 주인(사용자)의 사상체질 등을 융합해서 조경을 하는 일명 비보조경(裨補造景)이라 할 수 있다.

풍수서는 우리나라의 홍만선(1643~1715)의 『산림경제』<복거>편에 수록된 풍수조경과 중국의 풍수서『양택십서(陽宅十書』(명나라 초기 작품) 등 많은 책들이 전해 오고 있다.

풍수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수지리학에서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을 바탕으로 바람과 물의 순환 이치[天] 그리고 땅의 형성 과정과 지질적 여건[地]을 연구하여 인간과 동·식물[人]이 자연 속에서 좀 더 건강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터를 구하는 동양의 지리관과 경험 과학적 학문을 보완해 주는 것을 지질, 일조, 기후, 풍향, 물길, 경관 등 일련의 자연적 요소가 생물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파악하여 그들의 우열을 가려 그 중에서 조경의 측면에서 좋은 것만을 선택하여 생활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수조경은 전통조경을 모체(母體)로 하고, 전통조경은 풍수지리를 모체(母體)한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풍수사상은 자연이 가진 생명력(生氣)에 사람이 왕성하게 감응 받으면, 즉 길지에 조상을 매장(埋葬)하던가 혹은 길지에 살면 후손이나 사람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생각하는 믿음이고, 풍수지리학은 바람과 물의 순환 궤도와 양을 판단하여 길지를 찾는 방법과 과정이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어 오랜 세월 전승, 발전되어 온 지식을 말하고 있다. 즉, 땅은 스스로 지형이나 지질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주변에 흘러 다니는 바람과 물의 기계적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지형과 지질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좋은 땅이란 바람과 물의 흐름을 세밀히 관찰해야만 찾을 수 있다. 또 풍수설 혹은 풍수지리설에서 길지에 묘을 쓰거나 또는 집을 짓고 살아 후손이 번창하고 권세를 누렸다는 풍수적 효험들이 구전으로 전해져온 것에 완벽한 명당을 취하기가 어려운 것과 허(虛)하거나 단점을 보완해 주고 길한 것은 상생하게 비보(裨補)로써 하는 것을 풍수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풍수조경은 풍수지리와 전통조경과 사상체질 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결함이 있는 것은 보완을 하고, 좋은 것은 살려 온전한 것으로 조성해서 인간과 자연생태계가 상생함으로서 인간 또한 온전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풍수조경을 이용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고자 한다. 필자가 1990년도에 중국 장춘시의 근민루를 답사한 이야기이다. 풍수조경(風水造景)은 액운(厄運)을 막고 복(福)을 부르게 하는 것이나, 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점령하고 풍수조경을 악용한 것으로 당시 소개된 내용을 보면

1932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옹근 13년이라는 시간을 청나라 말기 황제 애신각라ᆞ부의(愛新覺羅ᆞ溥儀)가 신경(新京, 지금의 길림성 도회지 장춘)에서 위만주국 황궁(僞滿州國皇宮)에 거주하면서 일본의 뜻에 따라 처사하는 괴뢰황제 생애를 하였었다.

위만 황궁은 집희루(緝熙樓), 근민루(勤民樓), 동덕루(同德樓) 등 3대 건축으로 이루어졌다.

집희루의 뒷면에는 정방형이고 2층이며 서양풍격인 건물이 있는데 부의가 선조들의 조훈 ‘경천법조, 근정애민’에 따라 ‘근민루’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근민루는 부의가 정무를 보고 내빈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서 위만주국 황궁의 주요한 건축물이다.

근민루가 위만주국 화페(货币)의 정면에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황권을 상징할 수 있는 건물이라는 점도 감안할 수 있다.

그러나 부의는 근민루에 와서 일을 볼 때가 적었다. 그 원인은 대략 아래와 같은 몇 가지의 문제가 부의를 불쾌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나는 정방형으로 된 근민루의 정원안에 살구나무(杏樹) 한 그루가 있는데 중국 민간의 전설에 의하면 예로부터 "홍행출장"(紅杏出墻)이라는 속담이 있다. 즉, 안방에 있는 여자의 예쁨이 담장 밖으로 나가서 속세의 바람을 맞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자기의 여인이 담장 밖으로 나가 바람피우고 외도한다는 뜻이 되니 근민루에 가서 일을 보는 것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정방형으로 된 근민루의 정원안에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것이 즉 한자로 ‘ㅁ’자 속에 나무 ‘木’자가 있는 형상이 되여 결국 한자 ‘困’으로 된다. 곤(困)은 ‘묶이웠다’, ‘갇히웠다’라고 뜻하니 부의가 근민루에 있기가 거북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제국주의가 풍수조경을 이용해서 고의적으로 부의가 고분고분 일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징한 것이다.

위만주국 황궁 근처는 1930년대 당지(當地)에서 농민들이 과수농사 하던 곳으로서 살구나무가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제국주의가 장기적으로 중국의 동북을 강점하고 통제하기 위해 위만주국을 세우고 부의를 황제로 부추켜 놓으면서 신경(장춘)에다 황궁까지 건축하여 괴뢰 임금과 괴뢰 정부를 만들어 놓았고, 또 이렇게 풍수조경을 악용한 방법으로 부의에게 정신적으로 자극을 주면서 고통과 아울러 통제를 가해 왔던 것이다.

근민루 정원의 살구나무는 당시 직경이 대략 50cm, 높이가 대략 15m, 수령(樹齡)이 대략 80여년으로 추측된다.

살구나무와 개(拘)와 연관한 속설에 ‘살구’라는 이름 그대로 ‘개를 죽인다.’는 ‘살구(殺狗)’로 살구나무에 개를 묶어두면 건강하던 개도 시들시들 말라서 이내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서로 상극의 관계로 이것을 이용해서 개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소화제로 살구씨를 쓰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일본제국주의가 중국 동북을 강점하고 통제하기 위해 위만주국을 세우고 영구 집권하는데 풍수조경을 악용해서 "홍행출장"(紅杏出墻)과 곤(困)과 ‘살구(殺狗)’라는 이름 그대로 ‘개를 죽인다’는 살구나무를 심어 극 상극을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풍수조경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장운기 산림전문위원, 풍수조경사상체질치유연구가

 

 

 

[kgb한국방송 기자 kgb9101@naver.com]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저작권자ⓒKGB한국방송 & www.xn--kgb-ot8lm30d9phe49a.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